아름다운 것들

[스크랩] 밭 - 이향지 -

고립된 자아 2008. 3. 18. 12:56

 

 

/ 이향지 
 
 
 그녀는 밭을 팔았다 당산나무 아래 앉아 한숨을 쉬고 정월 지난 보리

이랑을 오래 밟아주고 밭 파시오 조르던 사람을 찾아갔다


  밭 판 돈으로 딸은 서양사학과에 등록을 했다 밭 판 돈을 들고 간 빚

쟁이는 다시 오지 않았다 밭 판 돈으로 남편은 담배를 사고 막내는 운

동화를 사고 대학을 마친 아들은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돌아

오지 않았다


  그녀는 마른 멸치를 받아서 화물선을 탔다 이제는 바다가 밭이다 이

제는 마른 멸치를 팔아서 보리를 사고 녹두 콩 팥 솎음배추를 사고 시

금치를 사고 풋고추 파 애호박 늙은 호박 고구마줄기까지 사고 땔나무

를 사고 남편 담배 값을 주고 막내딸 수업료를 주고 팔다 남은 멸치를

고추장에 찍어서 물밥을 삼키고 다시 마른 멸치를 받으러 간다


   그녀가 판 밭 아래로 길이 지나간다 그녀가 한숨 쉬던 당산나무 아래

까지 도시가 올라온다 그녀는 바다 앞에서 다시 한숨을 쉬고 마른 멸치

를 팔러간다

 

 

이향지 시인 

1942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,

1967년 부산대 졸업

1989년 <월간문학>으로 등단.

1992년 시집 <괄호 속의 귀뚜라미> 현대세계

1995년  <구절리 바람소리> 세계사

2001년 山詩集 <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> 나남출판

2001년  <북한 쪽 백두대간, 지도 위에서 걷는다> 창해

2001년 산행 에세이 <산아,산아> 창해

2003년 제 4회 <현대시 작품상> 수상
2003년 시집 <내 눈앞의 전선> 천년의 시작

 

 

출처 : ♣승윤이의 다락방
글쓴이 : 승윤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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